터키와 독일, 아르메니아 그리고 시리아

2016년 6월 3일

 

1. 독일의 “아르메니아 결의안”

지난 2일, 독일연방의회에서 100년 전의 한 사건에 관한 결의안이 채택되었습니다. 결의안의 명칭은 “아르메니아 결의안(Armenien-Resolution)”. 1915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자행되었던 아르메니아 기독교도에 대한 대학살을 대학살에서 제노사이드(Völkermord)로 격상시킨(인정한) 것이죠. 사건이 있은 지 100년 만에 이뤄진 일입니다.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는 19세기 말인 1894년부터 1896년과 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부터 1916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벌어졌던 비극입니다. 1차 세계 대전 중 오스만투르크 제국령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아르메니아 기독교도들이 강제이주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려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과 기독교도들이 학살 당했습니다. 저항하거나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은 가장 먼저 처형되고, 여자나 어린이들은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학대당하고 학살당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genocide(제노사이드)라는 단어는 유태계 폴란드인 변호사 렘킨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로 이 사건에서 착안되어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붙여진 용어입니다.

2. 독일과 터키는 지금

최근 국제적으로 난민이 가장 큰 이슈가 되면서 EU와 터키의 협정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원 인, 원 아웃(One in-One Out)’ 이라고 불리는 이 협정은 비정상적으로 그리스에 입국한 난민들을 터키로 돌려보내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터키에 있는 시리아 난민을 유럽에 이주하도록 하는 정책입니다. 터키~에게해~그리스~발칸~서유럽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난민러시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습니다. 터키는 EU를 위해 이와 같은 수고(?)를 대신해주는 대신 상당한 액수의 지원금과 터키의 EU가입에 있어서의 혜택 등을 약속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결의안으로 EU와 터키의 협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 그리스 레스보스에서 터키 국내에서의 난민에 대한 처우를 문제 삼아 터키로 송환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기도 했고 말입니다.

터키는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독일연방의회 원내의 정당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심지어는 터키와의 협정을 주도한 메르켈 총리의 지지로 이 결의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이죠. 터키 측에서는 독일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릴지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독일과 터키의 관계를 감안했을 때, 최근 이슈들에 관해서는 터키가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결의안 자체가 어떤 구속력을 가지거나 독일의 터키와의 관계에 있어서 큰 노선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둘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는 것뿐이죠. 사실 더 아쉬운 것은 독일입니다.

독일이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는 사실 쉽게 추론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아주 쉽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분명 훌륭한 결정이고, 그렇게 되어야 하는 옳은 결정이긴 하지만 국제관계라는 것이 극도로 이성적이고 이해타산적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쉽게 납득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독일이 터키가 수행하길 바라는 역할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을 지며 대의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 독일이 도덕적 책임을 느끼는가에 대해서는 글의 마지막에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이 글의 제목 마지막에서 시리아가 언급된 배경을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3. 아보 카프리알리안, 영화 <문이 없는 집>

<문이 없는 집(Menazil bela abwab)>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 시리아 알레포 출신 아보 카프리알리안 감독의 작품입니다. 영화는 감독이 어려서부터 살아 온 알레포의 집에서 캠코더를 통해 수집(archiving)한 영상들과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 관한 영화 및 사료 등을 취합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됐냐는 질문에 감독은 어렸을 때 집안 어디선가 발견한 역사적 사진들을 모아 놓은 앨범을 본 적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어린 나이에 잔인한 사진들이 보기 거북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사진들을 어떻게 찍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역사의 증거에 한몫하고자 archiving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화 중간중간에는 카프리알리안 감독이 모아 온 수십 년 전의 역사적 장면의 인서트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주된 줄기를 이루는 것은 감독의 집과 집앞 거리를 캠코더로 담은, 굳이 말하자면 조악한 영상들입니다. 카메라는 안정감이 없고 음향도 형편없죠. 하지만 감독이 살고 있는 집의, 시리아 알레포의 분위기는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100분 정도 되는 러닝타임의 영화 초반에 주된 배경이 되는 감독의 집은 매우 평화롭습니다. 결혼한 커플이 웨딩카를 타고 달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축구를 하며 뛰어 놀고, 감독의 어머니는 테라스에 앉아 책도 봅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터는 내전의 그림자가 화목한 가정을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거리에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고, 감독의 캠코더도 비밀경찰 등의 감시를 우려하는 듯 촬영됩니다. “자꾸 그렇게 찍다가는 비밀경찰들이 언젠가는 들이닥칠거다. 네가 우리를 다 곤란에 빠지게 할거야.”라는 감독의 아버지의 핀잔도 들리죠. 그리고 영화가 후반으로 진행됨에 따라 중반에는 그나마 멀리서 들리던 총과 폭탄의 소음이 집 근처에서 들려옵니다.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데 집이 흔들리고, 이웃의 아들이 폭탄에 의해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어린 조카의 인터뷰도 보여집니다.

                                                                                                                                                                                          – <문이 없는 집> 트레일러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시리아의 현재 상황과 감독의 집안의 역사적 아픔이 씨실과 날실을 짜가며 형태를 드러냅니다. 감독의 가족은 아르메니아계 시리아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비극적이게도 여기저기로 흩어졌는데 그중 일부는 시리아의 알레포에 정착했고, 감독의 가족은 100년 전 강제이주에서 살아남은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의 후손인 것이죠. 감독은 시리아의 현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아르메니아 계 시리아인들이 마주한 역사의 반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100년전에 겪었던 강제이주와, 현재 내전을 피해 외국으로 피난가는 상황이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도 못한 채 결국 다시 떠나야하는, 난민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운명은 매우 비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영화의 제목은 ‘문이 없는 집’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시리아 알레포의 집을 버리고 레바논으로 피난을 간 감독 어머니가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의 제목을 이 부분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의 제목은 내전을 겪는 시리아인들의 불안한 삶과 이들이 고국을 떠나야만하는 배경을 함축한 제목인 것입니다.

“밤에 자고 있는데 집 근처에 폭탄이 떨어진 적이 있었어. 아무도 다치지는 않았지만 정말 무서웠지. 그래서 집 밖으로 도망치려고 보니 문이 날아가고 입구가 부서진 돌들로 막혀있는거야.” 

4. 독일과 터키의 미래 

터키는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모양새입니다. 결의안이 논의될 때부터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우려를 표명해왔고, 결의안이 채택되자 베를린에 있던 자국 대사를 터키 본국으로 소환해버렸습니다. 독일은 “이 일은 이 일이고, 터키와의 일은 터키와의 일이다. 이는 과거사에 관한 일이지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선고가 아니다”라며 관련성을 부정하고 메르켈 총리도 터키와의 관계는 별 탈이 없을 것으로 본다라며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앞으로 터키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사실 독일도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과 오스만 제국은 동맹국이었고 분명 당시 독일제국도 아르메니아 기독교도에 대한 강제이주에 관해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15년 독일제국 수상이었던 베트만 홀베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터키가 우리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과거사 청산에 대해 병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집착을 보이는 독일이 사실 아르메니아 결의안과 같은 행동을 취한 것은 오히려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터키와의 관계가 특히 중요한 요즘 제법 큰 위험을 무릅쓰고 터키를 규탄하는 듯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음에도 잘못을 구하고자 하는 독일의 모습은 그냥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에서의 일본의 태도, 혹은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관계에서 우리나라의 태도에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시리아 난민들이 주목받는 요즘, 시리아 난민들이 왜 고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는가, 왜 이들은 난민이 되었는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독일의 결정이었습니다.

 (11기 인턴 김태욱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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