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필의 맨데이트들을 기억하시나요? 난민, 무국적자, 구금된 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 등 주로 이방인들과 관련 있다 보니 이들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환대'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데리다는 스스로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으로 경험에 바탕을 둔 환대에 대한 사유를 많이 하였고, '환대에 대하여'라는 책도 집필했습니다. 또 다른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 또한 환대를 조명했지요. 다만 접하기 쉽지 않은 이들의 철학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강대 철학과 대학원의 김성민 선생님을 초청한 어필. 김성민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우리 사회의 환대, 그리고 환대의 법. 그 안을 들여다보세요.

*





[사진 1] 가치를 향한 같이 걷기! 환대를 향하여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의 김성민 선생님을 우연히 알게 되어 평소에 어렵게 느껴져서 쉽게 접하기 힘든 철학. 이런 철학을 '환대'란 개념과 더불어 배울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제10회 살롱드어필 강의를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강의의 주제인 '환대.' 쉽지 않은 용어이지요. 영어권에서의 환대(hospitality)는 비즈니스적인 느낌에 가까워 호텔이 연상되는데요. 최첨단을 달리는 자본과 비즈니스 공간 속에서의 '환대'란 우리가 접근하려는 면에서 바라볼 때 어쩐지 역설적이게까지 느껴집니다. 불어의 환대(hospistalite)는 영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새로운 개념이 있습니다. 영어보다도 적극적이고 긍정적 의미의 환대를 아우르는 '보호' 즉 피난처입니다. 데리다는 이러한 환대가 언어적 접근의 단순한 '맞이'가 아닌 '공간 내기(spacement)'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개념 정리와 함께 김성민 선생님은 환대와 법, 그리고 정치적인 것이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들어가셨습니다.




[사진 2] 김성민 선생님을 소개 중인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




철학은 왜 낯설까요?

우리가 철학을 어려워하는 것은 마치 누군가 질문을 할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상호교환적인 상황에서 타인의 언어, 즉 '낯선 것'을 떠올리고 인지하는 편견 때문이지요. 이는 서로의 언어적 법칙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인데 환대 또한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일례로 우리가 잘 아는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들어봅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자신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방인이다'라는 생각을 보입니다. 어째서였을까요? 소크라테스가 처했던 상황이자 오늘날 우리가 자주 접하는 '재판'을 예로 들어볼까요? 재판에서는 법적인 설명이나 용어들이 많은데 같은 국가의 언어지만 이런 형식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그리고 소크라테스)는 그 상황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런 낯섦은 변호를 받고 있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폭력적이게 다가오게 하지요. 우리는 이처럼 무언가로부터 '낯설어질 때' 이방인화 됩니다. 


여기에 더불어 김성민 선생님은 재미있는 예로 '결혼을 하고 함께 자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 왜 낯섦을 느낄까?'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혀 감이 안 오는 중 또 다른 유명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의 접근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침입하지 않는 공간이 꿈(혹은 잠)이 있습니다. 이야말로 '나다움'을 느낄 수 있는 무의식적 활동 시간인데 이런 순간이 잠에서 깨면서 침범되는 것이지요. 매일 자고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낯섦'을 경험합니다. 다만 이게 날 동요시키고 침입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인식'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타자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이런 와중에 데리다는 우리의 삶의 조건은 우회적인 방식을 통해 타자와의 연관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우리가 거부한다고 말합니다. 그 예로 플라톤의 '대화록'을 보면 중요한 것은 소크라테스 자신의 말보다는 '타자가 어떻게 말했는지'인 것이 있지요. 이런 연관성 때문에 '내가 모른다'는 입장에서 남에게 듣고, 나와 다른 이방인이 어떠한지를 보면 상대가 중요해집니다. 마치 연애처럼,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떤지 물어보고 타자를 배워가는 것이지요.





[사진 3, 4] 열정적으로 강의 중이신 김성민 선생님




타자를 배우는 것, 그리고 질문하는 것

위에서 말했듯이 타인을 배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 그리고 그 매개체인 '언어'일 것입니다. 김성민 선생님은 이에 관해 '우리는 어떻게 질문하는가?', 즉 접근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전하셨습니다. 보통 서로 소개할 때 국적과 이름에 대한 질문을 먼저 합니다. 그런데 데리다는 이에 대해 "이름을 묻지 말라"고 합니다. 물론 현실에서 남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는 것은 어렵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말이 담고 있는 철학적 뜻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방인에게 "누구냐, 어디에서 왔느냐," 와 같은, 심문 같은 형식의 질문을 합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난민신청자들이 인터뷰할 때 많이 듣는 형태이지요. 이런 형식은 우리가 가진 언어 시스템에 그들을 맞추고 정립하려고 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다문화'라고 사용하는 언어의 경우에도, 각각의 개별 문화에 맞는 접근, 그들과의 교류 및 적극적 이해보다는 '우리의 방식'으로 그것을 사회 안에 존재하는 문화들의 집합체로 언어적 울타리에 가두는 것이지요. 이는 여전히 '낯섦'을 지우는 것이 중요한 이방인에게 벽으로 남습니다. 데리다는 이런 방식 대신 이방인이 '그들의 언어'로 말하도록 하고 우리는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곧 그들이 스스로가 궁금한 것을 드러내고 질문을 던지며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주체를 갖게 하는 것이지요. 




[사진 5] 참석 손님들이 열정적으로 강의를 듣고 있는 뒷모습




환대의 의미에 대하여

환대는 이방인에게 시민권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가족과 후손들에게 권리를 제공하는 사안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지게 될 권리뿐만 아니라 지켜야 할 의무도 동시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은 '환대'를 통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고 법적 테두리 안에 권리의 주체로서 설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역시 동시에 문제가 있을 시에는 심문받고, 벌을 받을 의무도 지는 '책임의 주체'의 가능성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것이 일차적인 이해의 환대라면, 그 안에는 또 다른 구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절대적 환대'의 존재이지요.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방인은 우리 사회 안에서 '이방인이라는 위상을 가진' 이들인데 반해 아직 사회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이름 없는 미지의 절대적 타자가 있습니다. 데리다는 이들을 포함하는 것을 절대적 환대라고 표현하는데요. 이쯤 되면 많은 이들이 생각할 것입니다. '절대적 환대가 왜 중요한지는 알겠지만, 절대적 환대를 이룰 방법이 없다면 오히려 무기력해지지 않나?' 선생님은 사유에 의미가 깊은 철학의 본질을 일깨웠습니다. 절대적 답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안에서의 답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결국, 질문에 대한, 그리고 주체에 대한 문제인 환대에 대해 데리다는 언젠가 급진적 실천의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질문하지 않고 환대를 이루는 세상.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통한 이상적인 세상을 꿈꾼 것입니다. 


우리가 포용하는 이방인과 그렇지 않은 절대적 이방인들. 어떤 쪽이든 '이방인'의 삶과 정체성 자체에는 공간(place)적으로 볼 때 어느 곳에도 쉽게 들어서지 못하고 부유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절대적 환대를 받고 자신을, 또 타인에게 연장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상 사회가 아닐까요?




[사진 6] 보람찬 강의가 끝난 후 '환대의 미소'로 기념촬영




불어에서 손님을 뜻하는 hôte는 손님인 동시에 주인이 되기도 합니다. 데리다는 본문에서 단어를 동일하게 사용하는데, '손님은 손님이다' '주인은 주인이다' '손님은 주인이다' '주인은 손님이다'와 같은 의미들을 언어유희처럼 담아둔 것이지요. 경계성에 관심이 있는 데리다는 철학적으로 '경계의 사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국경을 긋고, 선을 긋지만, 사실은 국경이라는 게 '타자'가 없으면 형성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짚어냅니다. 우리말 역시 외국어가 없으면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경계의 모호성이 존재합니다. 이러기에 운동성이 중요하게 됩니다. 경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개선하고, 나아가는 것이지요.


이런 철학의 사유 내내 데리다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환대는 불가능할지언정 가능해야 한다.'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것을 담아낼 언어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그래서 언어의 발명, 환대의 발명이, 기존 체제에서 불가능한 것을 찾아가는 일종의 혁명으로써 필요한 것이지요. 환대에 대한 관심은 윤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단계에서 행하는 것은 본질에 닿을 수 없어 정치적인, 사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의 주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환대와 법은 다소 이질적인 성격입니다. 법질서 내에서 권리를 찾는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권리를 찾는 과정이 데리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내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과정으로 권리를 찾는 자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누군가의 권리를 배워나가는 식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 속에서 정의가 법을 위반하거나 해체하지 않고, 그 이상의 환대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사유: 질문과 답변

자리를 찾아주신 많은 분은 김성민 선생님의 강의 후 열띤 질문과 답변을 찾아 함께 사유하고 이를 공유했습니다. 그중 몇 가지를 담아보겠습니다. 한 분께서는 이방인의 불법 경로 여부를 묻지 않고 환대하는 것이 데리다의 말이라면 그 결과가 내 재산이나 생명을 침해하는 것이라도 감수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김성민 선생님은 데리다와 레비나스는 그렇다고 주장한다고 전했습니다. 손님이 강도로 돌변하거나 주인으로 뒤바뀌는 가능성의 경우에도, 쉽지 않지만 환대를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데리다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주체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 관용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합니다. 그 예로 최근에도 큰 이슈로 떠올랐던 전통적으로 관용국가로 알려진 프랑스에서의 테러리즘 문제 등이 있지요. 그러나 데리다는 그렇기에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테러리즘과 '이방인들의 폭력'같은 문제가 양산된 것은 관용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임을 보여줍니다. 관용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경계의 관용'이었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결국 이것이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는걸 표현하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또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말라는 것이 거리를 두라는 것은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콩고에서 왔는가, 브라질에서 왔는가 와 같은 질문은 '묻지 말라'의 본질과 다릅니다. 이러한 정보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냐에 따라 중요할 수도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방식으로 질문하지 말아라'가 본질인 데리다의 이슈는 예를 들어 법적 절차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통역이 빈번히 일어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잘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통역이 있어도 영어와 같이 중심언어만 준비하는 등 우리의 방식에 머무는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정적 과정 이전에 친구로서 환대하는 과정이 있고 이를 거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점입니다. 근본적 환대는 법을 무시하지 않는 동시에 이 한계를 넘어 크게 포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집행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생기더라도 물질적 보상이나 절차를 생각할 뿐 트라우마 자체의 치료나 감정, 정서적 면에 대한 고려가 적게 되는 것처럼요. 상대의 상황을 배워나가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를 인지할 과정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삶에 실천에 대한 갈증이 있고 이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답습하는 사유가 아닌 '낯선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공간과 기회, 그리고 이를 통한 환대의 가능성. 끊임없이 접속하고자 하는 에너지야말로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며 '우리의 낯선 배움'은 또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두근거립니다. 여러분도 '이방인을 환대'하는 하루, 낯섦을 배워가는 삶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9기 인턴 김수연 작성)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공익법센터 어필 APIL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