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의 이름은.>: 호명의 정치학, 기억의 의지

 

시리아에서 발생한 난민 사태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난민 수용률은 5%를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난민협약국이라는 타이틀은 보기 좋은 허울일 뿐 실속 없는 전시행정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난민신청자는 해마다 점진적으로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9년에는 300명을 웃돌았던 난민 신청자가 2010년에는 423, 2011년에는 1,011, 2012년에는 1,043, 2013년에는 1,574, 그리고 2015년에는 2,896명으로 증폭해왔다.

 

저조한 난민 수용률이 지적하듯이 대한민국의 법무부는 난민 허가에 있어 극도로 인색한 모습을 내비친다. 제도권에서 지난한 과정을 뚫고 난민으로 인정받은 약 5%의 신청자는 가까스로 호명된 집단이다. 어떤 이들이 호명되고, 어떤 이들은 호명 받지 못 할지에 대한 결정권엔 권력관계의 도식이 개입된다. 호명의 정치는 누가 정상성에 더 부합하는지를 판별하고, 정상에서 탈락한 이들을 가차 없이 탄압한다. 그래서 기득권 중심인 호명의 정치는 배격의 정치며, 단절의 정치다. 호명 당하지 못한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한 본국으로 추방된다. 그렇게 그들우리에게서 배격됨과 동시에 단절된다.


(출처: http://www.no-difference.ch/index.php/idpa-16)

 

한국에서 1위를 석권하며 흥행 기록을 새롭게 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 또한 단절호명을 이야기한다. 도쿄와 이토모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상이한 시간에 놓인 두 주인공의 비현실적인 충돌이 영화가 내포한 단절 예라고 할 수 있다. 두 주인공을 매끄럽게 이어주는끈은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고 간절히 호명하려는 순간에 매듭지어진다. 영화는 이렇게 무스비라는 재료를 이용해 운명이나 기적과 같은 초월적인 힘을 미학적으로 포착해낸다.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이러한 단면만 보면 아름다운 서사다. 무스비로 표상되는 매듭은 단절을 거세하고 두 주인공의 이어짐을 꾀한다. 영화는 미학적 장치를 통해 두 주인공이 마치 서로의 이름을 동등하게 호명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과연 두 주인공은 모두 동등하게 호명하는 집단 (Speaking Subject)’일까?

 

이토모리의 외각에서 무녀의 딸로서 고통받는 소녀 미츠하와 도쿄의 도심에서 자유를 향유하는 소년 타키는 결코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 미래의 소년이 과거의 소녀를 구하려는 상황에서 소년의 선택지는 그녀를 구하거나 구하지 않거나. 그러나 소녀에겐 억압적인 환경이 기본값으로 주어져 있다. 소녀가 억압적인 환경에서 탈주하기 위해선 소년의 시혜적인 구원을 받거나 무궤도한 혜성이 출현한 날 밤 죽는 것. , 미츠하의 선택지는 타키의 그것보다 극히 제한적이다. 영화는 두 주인공이 서로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과정에 역점을 두지만 미츠하와 타키의 기억은 수평을 이루지 않는다. 호명하는 집단 (Speaking Subject)의 기억은 호명 당하는 집단 (Spoken Object)의 기억보다 광범위한 선택지를 배정받는다. 난민을, 성소수자를, 유색인종을, 여성을, 장애인을 기억함으로써 그들을 위한 제도, 법률, 정책 등을 제정하는 이들 또한 사회적 소수자인 당사자들보다 더 넓은 선택지를 부여받는다. 호명하는 집단이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호명 당하는 집단의 삶의 질이 변모한다. 영화에서 기억은 불균형을 이야기하고, 호명은 권력을 이야기한다.


(영화 <너의 이름은.> 스틸컷)

 

망각은 달콤하다. 기억하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 단언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망각은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망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는 행위는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난민’, ‘이주민’, ‘미등록 아동’, 이주노동자등의 집단으로 범주화된 이들 개개인의 이름을 호명하는 행위는, 이들의 삶을 타자화하지 않고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세월호와 같은 방대한 재난에 희생된 개개인의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그렇고, 영화에서 타키가 미츠하를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그렇다. 기억의 의지는 강하다. 호명의 정치는 강력한 기억의 의지에 따라 좀 더 평등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우리는 기억하고, 호명하고, 끈질긴 소통의 시도를 통해 우리그들사이에 놓인 모종의 위계를 허물 수 있다.

 

우리는 이토모리를 가격한 혜성을 기적으로 만들 수도, 파괴적인 힘을 가진 재앙의 시발점으로 만들 수도 있다. 선택지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고,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공익법센터 어필 12.5기 인턴 이예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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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익법센터 어필 AP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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