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필에 인턴 지원을 결심하기 까지

교육의 위대한 목적은 지식이 아닌 행동에 있다.

-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 - 

‘공익 법인에서 난민 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2014년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해 작성한 자기소개서에 기재하였던 저의 진로계획입니다.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까지 인권 전문 법률가가 되겠다는 목표는 확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뒤, 3년이란 시간은 기초 법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도 너무나도 짧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쏟아지는 학업 과제들 속에서 꿈을 향한 도전과 공익 실무 경험에 대한 욕심을 느낄 새 없는 일상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2학년을 마치고 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마지막 해가 시작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지금 시간이 없다거나 다른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핑계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열정을 접는다면, 변호사가 된 뒤에도 공익활동을 쉽게 도전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실천하지 않는 배움은 진정한 배움이 아니라는 신념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동계 방학은 인턴십을 도전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동기들이 본격적으로 변호사시험 입시에 돌입하는 이 시기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시기에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법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와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 이유’를 되새겨 보는 것도 큰 의미가 될 것이라 자신했습니다. 아울러 학부에서부터 법학전문대학원에 이르기까지 학교 내외에서 기른 국제인권메커니즘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과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배운 법학 지식들이 난민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이에 그 동안 먼발치서 바라보기만 했던 공익법센터 어필에 인턴으로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어필과의 첫 만남, 면접

사랑에 빠진 자 중 첫눈에 반하지 않은 자 누가 있는가?

-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 -

한 심리학자가 ‘초두효과’를 입증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첫인상이 어떤 대상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첫눈에 반하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필은 저에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1차 서류전형을 합격한 뒤, 면접을 보러간 날, 김세진 변호사님과 이일 변호사님의 환대는 제가 마주한 어필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여느 면접과는 달리 소파에 마주앉아 친누나, 친형과 엊그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듯 면접을 본 그 순간, 저는 어필에 인턴 지원을 하기를 잘했구나, 이곳에서 꼭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소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법조계의 일반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어필은 무척이나 편안하고 따뜻한 곳임이 첫 만남에서부터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어필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수평적인 조직 구조와 인턴들의 의견도 경청해주시는 변호사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공익단체의 일반적인 분위기일지 아니면 어필만의 분위기일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직책에 따른 자리 구분 없이 누구나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책상, 그리고 매주 화요일 오전에 모두가 소파에 둘러 앉아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주간 회의는 어필의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진정한 환대란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어필에서의 시간

이방인을 냉대하지 말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수도 있으니

-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시민단체를 평가하는 가장 핵심적인 지표는 ‘수익률’이 아닌 ‘추구하는 가치와 사명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시민사회영역에서는 회원의 많고 적음, 예산 규모의 크고 적음과 무관하게 그 조직이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게 좇아가고 있으면 그 조직은 매우 훌륭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필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어필이 추구하는 가치 중에 하나인 ‘환대’는 변호사님들뿐만 아니라 다른 인턴 및 자원봉사자 분들에게도 몸에 베인 습관 같았습니다. 새로운 인턴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지난 인턴들의 재방문을 만사를 제쳐두고 반겨주시던 모습을 보면서 ‘환대’란 이런 것이 아닐까 느끼곤 했습니다. 시끌벅적한 환영사, 화려한 환영식이 없어도 어필을 방문하는 모든 이가 진정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환대’의 본질임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어필은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활동을 주로 하는 곳입니다. 구성원들의 일상 속 ‘환대’의 태도는 곧 어필이 우리 사회의 ‘이방인’들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에 대한 답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어필을 찾는 모든 난민들은 어필을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집처럼 편안하게 여길 수 있었습니다. 공익 분야에서 변호사는 언제나 우리 사회의 약자를 마주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난민들은 뜻하지 않게 오랜 기간 터 잡아 살아온 고국을 떠나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출입국사무소의 끈질긴 의심과 자발적 귀국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법제, 우리 사회의 다소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불안한 지위에 처해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난민 인정을 위한 법률 지원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머무는 동안 마음의 고향이 될 친구가 아닐까요.

저에게 어필에서의 시간은 공익 분야에서 활동하는 변호사가 갖추어야 할 더욱 세심하고 특별한 ‘환대’의 태도를 배울 수 있게 한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어필이 나에게 남긴 것들


진정한 성공이란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 미국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 -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이들이 변호사가 되고자 합니다. 모두가 성공을 꿈꾸며 변호사라는 목표를 세우지만, 각자가 그리는 성공의 모습은 조금씩 다릅니다. 누군가는 대형 로펌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돈을 잘 버는 변호사의 모습을 성공한 변호사의 모습으로 그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제2의 조영래가 되어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되는 것을 성공한 변호사의 모습으로 그리기도 할 것입니다. 각자가 그리는 성공의 모습은 다르지만 어찌되었든 우리는 성공을 꿈꾸며 법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학을 공부하는 과정은 굉장히 지리합니다. 수많은 조문과 법리들을 단순반복적으로 학습하다 보면 어느새 ‘사람’을 잊고는 합니다. ‘사람’과 ‘사회’를 위한 가장 실용적인 학문을 배우면서, ‘사람’과 ‘사회’를 잊고 맹목적으로 학습에 임하는 실수를 반복하고는 합니다. 그러다보면 왜 법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를 잊기도 하고,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잃기도 합니다.

스스로 어떤 성공의 모습을 그리던, 우리의 성공의 끝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변호사를 만나게 되는 순간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에 하나가 벌어진 때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그리고 ‘사회’를 잊으면 안 됩니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고민이 다른 이의 인생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성공한’ 변호사를 만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필은 제가 다시 ‘사람’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난민에 대해 관심을 가진지 5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에서 난민을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난민 소송 진행을 위해 난민 신청자를 만나 상담을 하던 날, 한 난민 신청자의 넥타이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수년에 걸쳐 난민 인정 절차를 밟았고, 불안함 속에서 공장에서 고된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담을 위한 자리에는 말끔하게 넥타이까지 차려입고 굉장히 오히려 고맙다며 고향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고국에서 공무원으로서 안정된 삶을 살던 그에게 우리 정부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냐’며 난민 인정을 거부하였지만, 공무원의 삶을 포기한 그가 한국에서 하는 일은 힘들고 돈이 얼마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의 넥타이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신분에 대한 차별 없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한 그의 마지막 희망이자 의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난민 협약이 없었다면, 국제인권규약이 없었다면, 헌법이 없었다면, 난민법이 없었다면, 그의 넥타이는 어디에 기대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누군가의 넥타이가 기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어필에서 실습하는 동안 작성했던 서면과 조사했던 분야는 주로 헌법소원과 취소소송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습을 하는 동안에는 다소 생소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구제절차들이지만,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제절차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방학 기간이지만, 내가 쓴 몇 글자의 서면으로 누군가의 삶에서 굉장히 행복한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돌아볼 때는 굉장한 전율과 보람, 그리고 한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제가 법학을 공부하였음으로 해서 누군가가 행복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거기에 저의 학습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초심을 돌아보게 해주고, 또 앞으로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부족한 점을 더욱 보완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 어필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아울러 어필에 인턴 지원을 망설이는 많은 동료 법학도들에게 어필에서의 인턴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12.5기 허한욱 인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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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익법센터 어필 AP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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