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16회 살롱드어필: 혐오, 표현, 자유

-혐오와 표현과 자유의 경계에서

 

이번 달의 살롱드 어필은 숙명여대 법대에 계신 홍성수 교수를 초청해혐오, 표현, 자유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어필의 사이다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분께서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홍성수 교수는 처음에 표현의 자유에 관심을 가졌고,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의 한계로써 혐오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전체적인 강연은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를, 그리고 두 번째는 혐오표현에 대한 논의를 다루었습니다.



(제 16회 살롱드 어필 홍성수 교수의 "혐오, 표현, 자유" 포스터)


1. 표현의 자유


먼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가 표현의 자유라는 의제를 어떻게 다루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고, 표현의 자유라는 의제에서 나올 수 있는 주장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이 주장의 두 가지 선택지에 관한 정리가 흥미로웠는데, 홍성수 교수는 한 가지를표현의 자유 근본주의’, 그리고 다른 한 가지를규제 옹호론이라고 이름 붙여 설명했습니다. 표현의 자유 근본주의는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주장들을 말하며, 이러한 사상은 미국 사회에서 만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주장은 표현의 자유의 한계라고 볼 수 있는 혐오발언을 표현의 자유로써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라기보다는, 혐오발언은 지양하고 고쳐야 할 사회의 한 부분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규제는 최소화해야 하며 혐오발언을 다른 방법 (특히 그 발언에 맞서는 발언, Speaking Back)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이와 반대로 규제 옹호론은 이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혐오 발언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이어서 표현의 자유 담론의 한계에 대한 논의와 쟁점을 이야기했는데,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질문 세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이 질문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 방지와 혐오발언으로 인한 피해 예방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질문들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첫 번째는실제로 특정 혐오발언이 얼마나 큰 해악을 초래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두 번째는교정 가능성, 혹은 피해회복 가능성이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위축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은 없는가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피해 회복 가능성이라는 개념은 사상을 검열하는 것은 사회적 진보와 민주주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특정한 사상적 표현에 대해서 규제 없이 스스로 피해가 교정되거나 회복될 수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위축효과란, 특정한 언어 및 표현을 규제했을 때 다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는 효과를 말합니다. 이러한 위축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규제할 필요가 있다면 명확하고 날카롭게 규제해야 한다는 점을 홍성수 교수는 강조했습니다. 또한, 특정한 표현이 규제해야 할 만큼 왜 위해가 되는지를 확실하게 규명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살롱드어필 홍성수 교수의 강연을 위해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 규제에 있어서 구체성을 요구하는 이야기를 보충 설명하면서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 규제를 전반적으로 옹호하는 유럽의 사례와 표현의 자유 근본주의를 고수하는 미국의 사례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기억하는 유럽의 경우, 현재 유럽 내의 대부분의 국가가 혐오표현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이와 대비적으로 미국은 혐오표현을 형사 처벌하는 규정이 없습니다. 미국 수정헌법 1조인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생각하며, 사상에 대해서도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 사상의 자유시장론에 대해서도 신봉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그러나 이는 미국 내 혐오 표현 및 범죄에 대한 규제 및 처벌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2. 혐오표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 후에, 표현의 자유의 한계점으로써 혐오표현에 대해 강연을 이어 나갔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과 맥락을 이해한 덕분에 청중들은 혐오표현의 개념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홍성수 교수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극단적인 부정적인 감정 관념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그 예로 인종주의, 성소수자혐오, 성차별주의,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 등을 들었습니다. 그는 혐오표현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일차적으로는 혐오의 피해를 당하는 공통의 정체성을 가진 사회적 소수자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성, 인종, 민족, 성적지향, 장애 등의 속성을 가진 사회 및 정치적으로 권력적 열세에 있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서 그 집단의 사람들이 정체성을 공유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그는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들었는데,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여성이었기 때문에살해당했다는 점에서, 다른 여성들도 그 피해자가 자신이 될 수도 있었음을 느끼고여성이라는 공통의 정체성이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로 하여금 사회적 공포를 느꼈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그 피해자가 남성이었고남성이었기 때문에살해당했다면 현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분노가 한국 남성들 사이에서 유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차이는 공통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소수자 집단 (여기서는 여성)과 다수자 (남성)사이에서 오는 사회적, 정치적 권력 차이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후 강남역 10번 출구) 


이와 더불어 혐오표현의 대상은 혐오표현 피해자뿐만 아니라 이러한 혐오에 가담하도록 요청되는 일반 청중도 포함된다는 설명이 새로웠습니다. 소수자들에게 혐오 표현을 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혐오에 동참하도록 선동한다는 점이 혐오표현이 고유하게 가지는 특질임과 동시에 해악이라는 점을 홍성수 교수는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혐오표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혐오표현 발화자와 혐오표현 피해 당사자 이외에, 혐오에 가담하도록 호소 되는 일반 청중들에게 돌릴 수 있게 했습니다. 이후에 홍성수 교수가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만, 일반 청중이 혐오발언의 대상이라는 인식은 전략적인 혐오표현 대응방법을 가능하게 합니다. 혐오표현을 듣는 일반 청중들이 혐오 선동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주체를 고립시키는 전략을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일본의 카운터행동)


이어서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의 유형과 한국 내에서 일어나는 혐오 표현의 동향, 그리고 혐오표현에 대한 국제기준 및 해외사례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특히 한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오표현은 대부분 여성, 이주자, 장애인, 동성애자 및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이며, 과거에는 소수자에 대한 직접적인 차별을 하거나 적대시하고 폭력을 선동하는 양상을 띠었다면, 최근에는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모습으로 혐오 표현이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혐오표현의 유형이 이처럼 변하면서 그 내용의 위해성이나 해악성은 유지되지만, 법적으로 규제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시사했습니다. 또한, 혐오 표현의 영향에 대해서도 다양한 심리적, 정신적 고통과 소외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최근 일부 언론에서도 다루었던 내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그리고 이주자들이 혐오표현을 경험하고 심리적, 정신적, 사회적 고립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 혐오표현의 규제


이러한 맥락 속에서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혐오표현규제 옹호론과 혐오표현규제에 반대하는 주장 두 가지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표현의 자유 근본주의와 비슷한 맥락에서 혐오표현규제반대는 혐오표현을 옹호하는 주장이 아니라 그 실효성과 위해성을 고민하고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혐오표현 규제에 더 조심스러운 주장을 말합니다. 홍성수 교수는 두 가지 주장을 모두 설명하면서도 혐오표현을 형사적으로 규제하는 것의 방법과 범죄화에서 생길 수 있는 한계 및 문제점에 대해서 더욱 깊이 있게 설명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미국의 미국시민권연맹인 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를 소개했습니다. 홍성수 교수는더 적은 표현이 아니라 더 많은 표현이 최고의 복수라는 ACLU의 기본 사상을 소개했는데, 실제로 ACLU의 홈페이지에 있는 글에서 이러한 주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https://www.aclu.org/other/hate-speech-campus). 홍성수 교수는 이어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서도 미국 사회의 반응을 혐오표현 규제보다 더 많은 표현으로 사회 내에서 자정작용 할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혐오표현이 들려야 반박도 할 수 있고, 혐오표현을 못 하게 하면 나중에는 다른 방식으로 폭발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혐오표현이라는 것이 특정한 단어나 언어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는 맥락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기 때문에 법적인 규제를 통해서 실질적인 혐오표현의 감소 혹은 혐오사상의 감소의 효과를 불러오기는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더욱이 외국의 규제 총량 증가와 규제 남용의 가능성으로 인한 사례(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를 설명하면서 혐오표현 규제를 이용한 다양한 표현의 자유 침해와 사상 검열의 가능성도 시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혐오표현의 법적인 규제는 혐오표현이 나오는 원인과 사회적 배경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접근이 아니라 혐오표현의 결과만 처벌하게 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표현의 자유. 단, 조건있음"

출처 및 저작권: Newtown GraffitiCreative Commons 


홍성수 교수는 법적인 규제를 강조하면서 혐오표현 법적 규제는 법망을 피하는 혐오표현까지 다룰 수 없기 때문에 법적 장치에 지나친 기대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법적인 규제가 훨씬 다양하고 많은 혐오표현을 다양한 방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혐오표현 형사 범죄화의 문제와 실제로 혐오표현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의 저조한 집행사례를 들었습니다.


혐오표현 및 차별 등의 대체적인 규제 방법으로 상징적 규제, 정치인의 소수자 지지, 기업 혹은 대학 내에서 혐오표현 규제 정책 등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이야기했습니다 현실을 봤을 때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이상적으로는 혐오표현의 형사범죄화, 차별구제, 민사 구제, 형성적 조치의 조화로운 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일본 내에서 혐한시위에 반대운동을 하는 카운터행동과 유엔사무총장으로서 반기문, 그리고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성소수자 지지 연설 등을 소개하면서 법 규제 이외의 중요한 혐오표현 반대 기제들을 대안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특히 일본의 카운터행동은 기존의 혐한 시위대가 상정한일본인 대() 재일한국인의 대립구도를일본인과 재일한국인 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구도로 전복시킴으로써 혐한 시위대의 혐오 선동을 일반 청중들로부터 단절시키고 재일한국인에게 지지와 연대의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혐오를 고립시키는 효과를 불러냈다는 사례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카운터행동 사례는 시민사회가 함께 연대하고 같이 싸워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 사례인 것 같아서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4. 혐오, 표현, 자유,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


홍성수 교수의 이러한 혐오와 표현, 그리고 자유에 대한 설명은, 혐오표현은 당연히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저의 기존의 생각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습니다. 혐오표현의 규제를 과연 민주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저도 어렴풋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구체적으로 언어화하지는 못했지만, 혐오세력들의 표현의 자유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했었습니다. 그저 당사자들이 고통받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홍성수 교수의 설명은 표현의 자유는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하고 다만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그러한 규제는 매우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지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평소에도법 만능주의의 한계를 고민하던 터라, 홍성수 교수의 법적 규제에 대한 한계의식과 문제점이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의 개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국가 권력의 남용을 경계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논의들이 단순한 좋고 나쁨의 가치 판단이 아니라 더 구체적이고 담론의 결을 세우게 하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카운터행동의 사례나 세계 지도자들의 연대 메시지의 중요성, 법적 규제 이외의 시민 사회의 운동이나 연대활동들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새기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연하는 홍성수 교수)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접근은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혐오표현의 피해 정도가 심각하고 권력적 사회 구조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혐오표현의 피해 대상이 법적 규제 및 제도 밖에서 맞설 수 있는지는 현실적으로 회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홍성수 교수도 강연 중에 미국 내 존재하는 표현의 자유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설명했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은 소수자들의 현실을 도외시한 백인, 중산층, 남성 엘리트 집단의 비현실적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판적인 질문은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도 비슷한 맥락에서 제기되었습니다. 홍성수 교수의 강연에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흥미롭게 들었지만, 현실적으로 당장에 필요한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소수자들, 그리고 기본적인 권리와 삶의 기본 요건조차 부정당하는 소수자들에게 법적 보호의 필요성을 최소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통계자료와 인류학적 인터뷰 및 연구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들은 비()소수자 집단에 비해 고용, 노동환경 및 기본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적 부분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연에서 홍성수 교수가 직접 보여준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소수자는 다양한 심리적 정신적 불안과 신체적 물리적 폭력에 대한 공포를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별금지 및 혐오표현 금지와 같은 법적인 규제는 사회적 소수자가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인데 한국에서는 아직 이조차 미미한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논의 속에서 비소수자 집단이 소수자를돕는다는 방식의 시혜적인 관점이 아니라, 소수자 집단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사회의 차별에 대항하여 싸우고 투쟁하고 있는 현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홍성수 교수는 당연히 사회적 소수자들이 투쟁의 중심이고 소수자들의 주체적 움직임을 강연의 기본적인 전제로 두었기 때문에 강연 내용에서는 그 이외의 비소수자들이 혐오표현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고 법적인 제도와 관련하여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논의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의도한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강연의 내용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이날의 논의에서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과 그 대응 방식에 있어서 소수자들의 목소리 혹은 소수자들의 직접적인 혹은 연대 대응 활동이 강연에서 부족했던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많은 시민단체의 활동가분들이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활동, 특히 연대활동들이 함께 소개되었으면 홍성수 교수의 주장과 함께하는 맥락에서 더 풍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날의 강연은 그동안 머릿속에서 어설프게 맴돌고 있던 저의 생각을 쉬운 언어로 정리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애매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에 대해서 명쾌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매우 쉽고 명확한 해설을 해준 홍성수 교수에게 감사했고 더 심도 깊은 연구 내용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홍성수 교수가 마지막 질의에 대한 대답으로 강조한 부분은 한국 내 실천적 혐오표현 대응 기제와 실질적 제도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이 강연과 다양한 질의 및 의견을 통해서 권력적으로 약자인 소수자가 주체성을 빼앗기지 않고 권리 쟁취를 위해 싸워나감과 동시에, 비소수자 혹은 다양한 소수자가 함께 교차적으로 연대하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가치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혐오표현 규제를 날카롭게 정의하면서 혐오표현에 맞서야 한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보았습니다. 이 과정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고 앞으로도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3기 인턴 이주원 작성)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공익법센터 어필 APIL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