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 부흥회'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고백하자면 조금 웃겼습니다. 제 경험 안에서는 '부흥'이라는 단어가 종교적 맥락에서 자주 사용되다 보니 뭔가 경건해야 할 것 같고, 제가 감히(?) 가도 되는 곳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 가보니 주최 측도 제목을 두고 고민을 했다고 하는데, 다만 결이 조금 다른 고민이었습니다. '부흥'하려면 애초에 국제인권이 흥한 적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시기가 있었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웃프기 그지없는 서두였고, 어쩌면 이 웃픈 서두야말로 오늘날 국제인권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전쟁과 학살, 혐오와 차별이 끊이지 않는 요즈음, 국제사회는 때로 무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기에 '부흥회'라는 제목은 일종의 선언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이야기하고, 연결되고, 버티겠다는 선언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지개행동 이호림 님의 발언이 기억에 남습니다. 국제인권의 현실이 절망적일수록, 그 공간을 반인권 세력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당위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길어 올린 경험담이었습니다. 이제 반인권 세력은 예전처럼 노골적인 혐오 표현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혐오를 교묘하게 감춘 채, 그들 역시 국제인권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국제 포럼에 '그럴듯한 얼굴'을 하고 들어와 교묘한 혐오를 공개적으로 쏟아내고 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가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사실 저는 거창한 생각 없이 그저 국제법에 흥미가 있어 신청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모임이 막 시작했을 무렵 화면에 띄워진 포스터를 보다가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국제인권'이란 정확히 뭘까? 국제법과 같은 말인가? 인권은 원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것인데, 굳이 국제인권이라는 표현이 왜 따로 있는 걸까?
모임을 통해 제가 나름대로 이해한 바에 따르면, 국제인권에서 '국제'는 인권 실현을 위한 연대와 연결의 방법론을 가리키는 듯했습니다. 그렇기에 참석자 상당수가 법률가였던 만큼 국제인권과 국제법이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는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각자가 서 있는 현장에 따라 국제인권을 바라보는 시선은 꽤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가령 정의기억연대 활동가 방학 님은 국제인권 메커니즘에서 나온 권고를 국내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만들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의 경우 그것이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범죄라는 점에 대해서는 국내외적으로 이미 널리 합의되었기 때문에 관련 국제기구들의 권고안도 비교적 풍부하게 나오는 편입니다. 따라서 문제 자체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는 크지 않지만,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되기 쉬운 만큼 그것이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의 문제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키고 논의를 이어가는 일이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사단법인 아디의 이동화 님은 국제인권이라 했을 때 그것이 누구의 인권이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주로 미얀마 사람들, 로힝야족,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 문제에 힘쓰는 아디이기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와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당장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이기에 문제로 인식되게 하는 것부터가 난관인 것입니다. 즉, 이 경우에는 권고를 어떻게 이행할지를 고민하기 이전에, 애초에 권고의 존재를 알리는 것부터가 과제인 셈이었습니다. 이처럼 같은 국제인권 안에서도 더욱 외면당하는 영역이 있음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백가윤 님 이야기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advocacy'의 'ad'에는 '대신하여'라는 의미가 있다는 설명으로 시작한 백가윤 님은, 직접 제네바에 갈 수 없고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낼 여력조차 없는 단체와 사람들을 대신해 전달하는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여러 조약 기구와 권고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맥락화할 것인지, 즉 '숲'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계속 고민한다고도 했습니다. 하나의 실천적 방법론으로서의 국제인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백가윤 님은 과거 참여연대 활동 당시 제주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두고 국제 연대 성명을 조직했던 경험도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해군기지 건설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강정을 둘러싼 지난 10년의 싸움이 있었기에 적어도 이후의 국책 사업에서는 정부가 이전처럼 쉽게 밀어붙이지는 못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법률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 제가 쓰는 서면에 국제법적 근거를 하나라도 더 채워 넣고, 공문을 보낼 때마다 관련 국제 기준을 끈질기게 인용하는 일일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누군가는 대신(ad-) 목소리를 내야 할 때(-vocate) 법의 언어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저만의 '선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고 제가 국제인권의 부흥에 미력하나마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국제인권 부흥회'라는 제목만큼이나 위트 있게도, 행사는 '국제법도 기세다!'라는 외침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강한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남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격언과도 어딘가 맞닿아 있는 듯했습니다. 가늘게, 그러나 끈질기게 버티는 것, 그 기세를 잃지 않는 것이 지금 국제인권에 가장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희진 변호사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