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필의 쥴리앙입니다. 가자에서 오셨던 인권활동가 살레 엘란티시님이 최근 어필의 조력 속 난민지위를 인정받으셨습니다. 언론에도 많이 소개되었던 터라 정말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셨는데요. 오늘 '비틀거리며, 짓다'에서는 이미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이야기에, 몇 가지 덧붙이고 싶은 제언을 후일담으로 나눠보고자 합니다.
살레 알렌티시님은 누구인가
살레 엘란티시님은 1997년, UNRWA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내 한 보건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난민이었습니다. 조부모가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당시 고향을 떠나 가자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후 삶도 전쟁 속에서 이어졌습니다. 2007년부터 이어진 봉쇄와 반복된 전쟁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2018년에는 '위대한 귀향 행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평화적인 시위였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각고의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이례적으로 탈출할 길이 열렸을 때 도착할 수 있었던 곳이 한국이었고, 그는 2022년 한국에 왔습니다. 이후 가자의 고통스러운 소식 속에서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알리는 인권활동가로 약 3년 4개월을 치열하게 활동해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비로소 난민의 지위를 확인받았습니다. 그는 '압도적인 기쁨을 느낀다'면서도 '애초에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분노와 씁쓸함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의 이면에는, 언론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가자에서는 2025년 10월 휴전 이후에도 인도적 위기와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살레 엘란티시님 외에도 가자지구·서안·요르단·레바논·시리아의 난민 캠프에서 3, 4대째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전 세계에 수백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 그리고 2026년 8월 21일 기준으로 최소 75,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살레 엘란티시님이 '분노와 씁쓸함'을 느끼는 지점은, 아마도 이러한 사실들이 여전히 엄존하고 있다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호에는 공백이 있을 수 없습니다 : 팔레스타인 난민의 특유한 난민지위 인정법리(제1조D)
살레 알렌티시님과 같은 팔레스타인 난민분들에 대한 한국의 보호 의무는 일반적인 난민분들과 조금 다른데요, 잠시 법으로 돌아가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국제난민법에서 난민보호라는 규범이 정당화되는 근거는 '대체적 보호'에 있습니다. 국민은 본래 국적국 정부로부터 보호받아야 하지만, 그럴 수 없고 오히려 '박해'를 경험하게 될 경우, 피난한 제3국이 이를 '대체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보호의 공백'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법상의 관념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그 자체에서 '인권'이 비롯되며, 국가는 공백 없이 인권을 보호·보장·촉진할 의무를 갖습니다. 따라서 난민들이 비호를 구하는 것은 세계인권선언이 확인한 권리이지, 시혜적 정책이 낳은 부수적 효과가 아닙니다.
팔레스타인 난민이 처한 법적 위치는 다른 통상적인 난민들과 조금 다릅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생겨난 '피점령 팔레스타인 영토(OPT)' 내의 팔레스타인인들은 국적국의 실효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24년 권고적 의견을 통해, 서안지구·동예루살렘·가자지구에 대한 점령 자체가 국제법상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정착촌 건설, 병합, 천연자원 이용이 모두 위법하며, 이스라엘의 관련 법률과 조치가 인종분리 및 아파르트헤이트 금지 원칙까지 위반한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국가 승인이 다수의 국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점령상태를 고려할 때 실효적 지배를 받기는 어려우며, 이미 인접 국가로 피난한 난민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UNRWA가 교육과 의료 등 인도적 지원을 제공해왔지만, 국가를 대신해 이들을 보호할 권한이나 의무를 가진 기구는 아닙니다. 다시 말해, 살레 엘란티시님과 같은 이들은 애초에 '돌아갈 국가'조차 법적으로 희미한 처지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상의 무국적 상태와 실향의 대물림은 개인의 선택이나 일시적 상황이 아니라, 1948년 나크바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이러한 특수성을 감안하여, 1951년 난민협약은 제1조D항을 통해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독특한 구조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전문('제외조항')에 따르면, UNRWA로부터 현재 보호나 원조를 받고 있는 사람은 협약 적용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이미 별도의 보호 체계 아래 있으니 협약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후문('인정조항')은, 그 보호나 원조가 '종지(중단)'된 경우 '그 사실에 의하여(ipso facto)' 협약상 이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규정합니다. 즉 UNRWA의 보호가 끊기는 순간, 별도의 심사 없이도 자동으로 협약의 보호 대상에 편입되는 것입니다. 조금 쉽게 설명하면,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UNRWA로부터 보호를 받는데, 그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곳에 있다면 피난국이 대체적으로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이 일반적인 경우와 다른 이유는, 일반 난민신청자는 협약 제1조A항 제2호에 따라 개별적 박해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지만, UNRWA 등록 난민은 국제사회가 이미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한 상태이므로 보호·원조 중단이라는 사실만 확인되면 추가 입증 없이 '그 사실 자체로' 난민 지위가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UNHCR은 2017년 보호지침 제13호에서 이 '중단'을 판단하는 네 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 임무 종료, 임무 수행 불능, 생명·신체·안전에 대한 위협, 그리고 보호를 다시 받지 못하게 막는 현실적·법적·안전상 장벽입니다. 이 중 하나만 충족해도 인정조항이 적용됩니다. UNRWA의 임무수행지역 바깥으로 탈출한 난민이라면 그 보호를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아무런 심사도 없이 난민의 지위를 확인해주어야 합니다. 인권은 전 세계 어디서나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 던지는 함의 — 누구나, 어디서나 인간이라면 보호를 받아야 하니까
1951년 난민협약 이후 형성된 국제난민법 체계는 오늘날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핵심 가치만큼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어디에서나 보호를 받아야 하며, 그 보호는 국적·민족, 종교, 인종, 정치적 의견, 특정사회집단 소속 여부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여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난민들이 충분히 보호받고 있을까요? '그 사실에 의하여' 곧장 보호되었어야 했던 살레 엘란티시님과 같은 자명한 사안에서조차 3년 4개월이 걸렸습니다. 난민들의 정당한 비호신청이 장기화된 심사대기와 OECD 최하위권 난민인정률로 설명되듯이, 한국의 난민보호 체계는 보호에는 느리고 추방에는 빠릅니다. 3년 4개월보다 더 오래 기다리고도 아무런 지위를 얻지 못한 채 추방의 문턱 앞에 선 난민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기쁜 소식이어야 할 살레 엘란티시님의 뒤늦고 희귀한 난민인정 소식을 저희가 온전히 기뻐하기 주저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소식이 역설적으로 한국 난민보호 체계의 '느리고', '좁고', '고통을 가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통받는 분들의 목소리가 평상시에는 잘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번 소식은 역설적으로, 한국 난민제도의 개혁을 다시 한번 요청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안은 한국 정부가 더 이상 침묵 뒤에 숨지 않기를 요청합니다. 누군가를 난민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가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음을 한국 정부가 확인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국가간의 관계를 피난한 개인보다 앞세워, 인권을 침해하고 박해를 가하는 국가들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 난민들의 권리를 무시해도 될까요? 외교에는 조정이 필요할 수 있지만, 인권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난민 보호를 성실히 축적해온 국가들은 외교적 고려를 난민 보호보다 앞세우지 않습니다.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오랫동안 모호한 중립의 언어 뒤에 머물러 왔습니다. 2012년 팔레스타인의 유엔총회 옵서버 국가지위 승격 표결에서도 기권했고, 이후에도 관련 결의안에 거듭 기권표를 던져왔습니다. 2024년 유엔총회의 불법점령 종식 요구 결의안, 2026년 유엔 인권이사회의 점령지역 인권상황 결의안 채택 때도 한국 정부는 기권 대열에 섰습니다. 대통령이 최근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을 언급했을 때조차, 외교부는 서둘러 '특정 결의안이나 정책에 대한 입장 표명이 아니다'라며 선을 긋기도 했습니다.
다른 길을 택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스페인, 노르웨이, 아일랜드는 2024년 5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스라엘을 집단학살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으며, 콜롬비아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이유로 외교관계를 단절했습니다.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자 2025년 안보리 의장국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한국의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국제사회 다수가 제노사이드로 규정한 명백한 위법행위 앞에서, 외교의 언어가 인권의 언어를 압도해서는 안 됩니다. '보호의 공백' 없이 이루어져야 할 인권의 옹호에, 앞으로 한국 정부의 더 분명한 역할이 필요합니다.
살레 엘란티시님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더 평화와 안전을 찾고,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향한 부당한 폭압을 고발하는 활동을 펼쳐나가는 도상에서도 더 힘내어 동참하려 합니다. 그리고, 여태까지처럼 어필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도, 느리더라도 꾸준히, 한길로 가면서, 난민들의 이야기와 자리를 한국 사회 안에서 찾고 확보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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