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2년 8월] #31. 이해 없는 세상에서 - 강재영 로스쿨 실무수습생

2022년 9월 5일

즐겨찾기에 담아놓고 종종 꺼내 보는 글이 어필 홈페이지에 둘 있습니다. 하나는 김종철 변호사님의 「기분 좋은 소풍을 끝내며」이고 또 하나는 이일 변호사님의 「저는 오늘도 “미안합니다”로 말을 시작하는 변호사입니다」입니다. 드러난 내용 밑에 담긴 수많은 시간과 사건 그리고 기다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참 많은 사연이 어필이라는 단체 그리고 공간에 녹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필의 성원들이 각자 어떤 곡절의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고 묻지도 않겠지만,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요. 그렇게 각기 다른 사연이 모여 먼 나라에서 온 또 하나의 사연을 조심스레 어루만진다는 그 사실이 제게는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실무수습을 온 지 이틀째 되던 날, 이일 변호사님과 내담자분 그리고 통역사님의 자리에 동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담자께서 가져오신 많은 자료를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는 작업이 필요했고, 수련 차원에서만 동석하였었기에 그 작업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저 자료를 복사하는 작업이겠지만, 인생을 걸고 오신 분의 족적을 증명할 자료를 어쩌면 마지막으로 파일화하는 작업이 되겠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 번씩 화질을 확인하고 순서가 엉키지는 않았는지 대조하였습니다. 그 상태로 고정될, 누군가의 생에 밀접하게 다가가는 순간의 떨림을 품고 산다면, 조금이나마 덜 상처 주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설핏 스쳤던 것만도 같습니다.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애인과 함께 만주로 애정도피한 동생 옥희에게 작가 이상이 쓴 편지글 「동생 옥희 보아라」의 구절입니다. 어필 성원들은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지만, 제도화된 인종주의의 나라에서 소수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기댈 곳을 자처하는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네 편’이 저를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믿음이 가고요. 여러 곤경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의 용기도 물론 잊어서는 아니 될 겁니다.

글을 쓰고 있는 밤에도 어필 메신저에는 활동 중임을 의미하는 초록불이 몇 개 켜져 있습니다. 어떤 다정함이 이들을 잠 못 들게 하는지,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글로 만날 때마다 언제나 감동을 주시는 김종철 변호사님의 글을 조금 바꿔서 가져오며 마치자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사랑으로 한 일들뿐이니,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떨는지요.

  

(강재영 로스쿨 실무수습생 작성)

최종수정일: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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