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2년 9월] #32. 솟아날 구멍은 있는가 - 전수연 변호사

2022년 9월 15일

<솟아날 구멍은 있는가>

 

종종 저의 개인 휴대폰으로 제가 돕고 있거나 과거에 도왔던 난민분이 “Hello, How are you” 하며 인사를 건네올 때가 있습니다. 순간 마음이 철렁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신건가. 사고를 당하셨나. 아니면 외국인보호소에 구금이 되셨나. 생계가 어려우신건가. 무슨 일일까.

 

제가 돕고 있는 난민분 중, B는 A 국에서 군사쿠데타 및 독재정권 타도시위를 하는 등의 반정부활동을 하다가 집회 현장에서 불법체포 후 안보국으로 끌려가 구금되어 전기고문을 받는 등의 박해를 받은 사실 및 정황 등에 근거가 있다고 인정되어 난민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물론 어필과 만났다는 것은 기존 난민신청에서 난민불인정결정을 받았다는 뜻이겠지요. 

 

B는 눈 한쪽이 의안입니다. 본국에서 반정부 시위 도중에 시위대를 향해 경찰들이 쏘는 산탄총의 총알이 눈에 박혔었다고 합니다. 저와 면담일시 약속을 할 때마다, 모든 날이 가능하다고 했던 B였기에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저의 눈 때문에 일자리를 찾는 것이 어려워요. 그리고 한쪽 눈만 써야해서 오래 일하는 것도 많이 힘듭니다.’  그의 대답을 들으며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과 불안을 살피게 되는 일은 제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B가 어느 날 보내온 ‘hello!’ 라는 메세지. 무슨 일인가 하고 대화를 이어가보니, 난민인정을 받은 후 어렵게 구한 일자리인,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경찰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통역인과 함께 조사에 동석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그는 관리자의 잘못된 지시로 인해 큰 기계에 상반신의 절반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었고, 이미 병원에서 2달간 입원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당시 사고 직후 현장을 B의 외국인 동료가 동영상으로 촬영해주었는데, 동영상 속에는 “이 새끼야! 그거 찍지마! 끄라고!” 하는 작업반장 혹은 관리자로 보이는 한국 남성의 목소리도 같이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경찰서 앞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고, ‘아직은 걷는 것이 힘들어요.’ 라고 하며 저와 발맞추어 걷지 못하는 본인의 상황을 미안해 했습니다. 하필 구름 한 점 없는 햇빛 쨍쨍한 날이었습니다. 골반을 다쳐 다리를 절뚝이며 걷는 그의 그림자가 더욱 선명했습니다.

 

이후로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또다시 B로부터의 메시지였습니다.

 ‘지난 번 산재 때문에, 정상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자리도 구할 수가 없어요. 아내와 아이가 있는데, 생활비가 없어요. 돈을 빌릴 곳이 있을까요? ‘

저는 B와 함께 B가 거주하는 지역의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복지사님과 상담을 받고 생계급여 수급 신청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신청한 지 2주가 지난 어느 날, 급여 심사 담당자라고 하며 제게 전화가 왔습니다. 

“저희가 심사과정 중에  B씨의 1년치 통장내역을 보는데요, 해외로부터 100-200만원 정도의 금액을 몇 번 입금받은 기록이 있더라구요. 이렇게 되면 생계급여 받으실 수 없으셔요”

B 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하였습니다. 산재를 당한 이후 집에 일할 사람이 없으니, 해외에 있는 친구들 몇 명에게 나중에 갚겠다고 하고 아내와 아기를 부양할 당장의 생활비를 입금받은 것이었습니다. 

B는 결국 입금내역 때문에 현재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몸상태임에도 생계급여조차 받지 못하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돈을 빌릴 친구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1% 의 난민인정률을 뚫고 난민지위를 인정받으면, 새로운 별세계가 ‘뾰로롱’ 열릴 것 같았으나, 변한 것은 없으며, 변한 것이 있다면 망가진 B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아가게 생긴’ 그와 그의 가족의 경제적 상황입니다.

 

“어필은 난민신청자분들의 법률지원을 돕는 곳이고,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분을 돕는 단체는 아니어서, 생계비 지원을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미안합니다.” 라는 말로 제게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괜한 기대감을 갖지 않도록 말씀드리고 있고, B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런 말을 내뱉어야하는 그 순간은 매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다른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볼게요” 라는 자신없는 말을 덧붙이며 힘없이 대화의 끝을 맺어보지만, ‘thank you’ 라고 답장이 올 때에는 한번더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마치 그 전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더욱 비참한 상황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마치 B처럼요. 적어도 지금 B에게는, 또 B를 돕는 저에게는 솟아날 구멍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B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딱 한 번 본적이 있습니다. 같이 이동하던 길에, 통역사님이 축구얘기를 꺼냈습니다. 당시 A국과 한국은 국가대표 평가전을 며칠 앞두고 있었던 시기였는데, B는 한국과의 경기가 너무나 기대된다면서 아이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이후 그의 페이스북에는 경기장에서 찍은 그의 셀카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의 미소를 보니 잠시나마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안전하기를, 안녕하기를, 무엇보다 가족들 굶기지 않고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게 되기를, 그의 몸이 잘 회복되기를. 

마치 생일날 케이크에 꽂힌 초를 끄기 전, 소원을 비는 마음과도 같습니다. 

솟아날 구멍이 있겠지요? 

▲ 어필 사무실의 큰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은 언제 봐도 좋습니다. 아직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을지도 몰라.
최종수정일: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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