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위기에 국경은 없다 -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난민 세미나’에 다녀와서

2026년 11월 5일

2026년 11월 3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 연구단이 주최한 연구 프로그램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주제는 ‘기후난민의 국제법상 보호의 쟁점들’이었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APIL)의 이일 변호사가 발표를 맡아, 난민 조력 현장에서 쌓은 실무적 통찰과 함께 연구단의 향후 연구 방향에 참고가 될 다양한 사례와 현실을 깊이 있게 소개했습니다.

발표는 이 변호사가 2025년 11월 학술지 『평화들(PEACES)』에 게재한 논문 「기후난민 보호의 구조와 국제법상 보호」를 뼈대로 삼아 논문 이후 1년 동안의 변화를 짚으며 진행되었습니다.

어필 후기를 보시는 분이라면 이미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국제법상 난민의 정의는 분명합니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이 정의 어디에도 ‘기후’라는 말은 없습니다. 

다행히도 심각한 기후 위기가 이어지는 동안 2019년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의 테이오타 결정(Ioane Teitiota v. New Zealand)은 기후변화로 생명권이 침해될 실질적 위험이 있는 곳으로 사람을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처음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키리바시 출신 청원인에게는 위험이 10~15년 뒤의 일이라며 송환을 허용했습니다. 원칙은 열렸지만 문은 닫힌 셈입니다.

이 변호사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테이오타 결정이 남긴 이 간극이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메워지고 있는지를 짚었습니다. 진전은 국제재판소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2025년 7월 미주인권재판소는 권고적 의견 OC-32/25에서, 각국이 기후변화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을 위해 인도적 비자, 임시체류허가, 난민 또는 그에 준하는 지위 같은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달 국제사법재판소(ICJ)도 테이오타 결정을 명시적으로 인용하며, 송환 시 생명권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길 실질적 위험이 있다면 강제송환금지의무가 생긴다고 확인했습니다.

각국의 실행은 더 조심스럽습니다. 뉴질랜드 이민보호심판소(IPT)는 투발루 출신 다섯 식구에게 거주비자를 부여했지만, 기후를 난민 사유가 아닌 재량적인 인도적 사유로 다뤘습니다. 호주와 투발루의 팔레필리 연합(Falepili Union) 조약에 따른 세계 최초의 ‘기후비자’에는 연 280명 정원에 가족 포함 8,750명이 등록했습니다. 인구 1만 643명인 나라에서 절반이 넘는 사람이 떠날 준비를 한 셈입니다. 반면 COP30과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FRLD)에서는 강제이주를 위한 별도의 장치나 재원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역시 지난 1년은 공백에 가까웠습니다.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도, 제4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에도 이주나 난민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난민법에 보충적 보호지위를 신설하는 입법도 진전이 없습니다. 제도가 이렇게 더디게 움직이는 가운데, 논문에서 가장 눈길이 간 대목은 ‘특정 사회집단’에 대한 해석(「기후난민 보호의 구조와 국제법상 보호」, 43-47)이었습니다.

난민협약의 보호를 받으려면 박해가 다섯 가지 사유 중 하나와 관련되어야 하는데, 기후 난민에게는 이 관련성 요건이 가장 높은 벽입니다. 이 변호사는 협약 문언에 특정 사회집단을 한 나라 안의 소수집단으로 한정하는 제한이 없다고 짚습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가 소멸할 것으로 예상되는 태평양 도서국가의 국민은 중대한 인권침해를 받을 것이 자명한 특성을 공유하면서, 다른 나라 국민과 달리 바깥에서 식별 가능한 집단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논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위난은 모든 집단에 공평하게 닥치지 않습니다. 경제적·사회적 여유가 있는 소수는 유학, 취업, 투자이민 같은 우월한 체류 지위로 어렵지 않게 위난(危難)을 피할 수 있지만, 대다수에게는 비호신청 말고는 나라 밖으로 떠날 길이 끊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후 변화로 인해 해외로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주할 수 없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국내에서도 차별받는 집단을 이루며, 특정 사회집단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제안을 기후위기 시대에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행성적 사유(Planetary Thinking)를 떠올려 지금의 현실을 고민해 봅니다. 행성적 사유란 기후 위기와 인류세(Anthropocene) 시대를 맞아, 기존의 인간 중심주의와 ‘세계(World)’ 또는 국가·민족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지구 전체를 하나의 통합된 행성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사유 방식입니다. 결국 기후난민 문제는 취약성의 경계를 어디에 긋고, 그에 따른 구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지구’라는 한 행성에 산다면 결국 기후 변화의 국경은 지금 그어진 선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과 책임이 있고, 특히 난민지위를 받을 특정사회집단은 그 사회가 아니라 우리 지구에서 무분별한 성장과 개발로 인해 가장 취약해진 그 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보호하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도울 책임은 지구에 사는 모두에게 달려 있는 것 아닐까요?

작성 | 인턴 28기 김준영

[어필은 난민과 한국사회에 대한 강의를 요청주시는 곳에 어디든 찾아갑니다.]

첨부문서

최종수정일: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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